인도로 돌아가기 by 무심한듯시크하게


두달 기한의 인도여행이 얼마 남지않았다.
맘같아서는 네팔 비자를 연장할 수 있는데까지 연장하고, 포카라에 죽 머무르고 싶었다.
사실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 자체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다들 그런다고 하니까....

왠지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조금만 더 즉흥적이었다면, 아마도 그렇게 했으리라 확신한다.

인도에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네팔로 들어가는 버스에서 진을 뺏던 터라, 무리해서라도 편하게 가고 싶었다.
터무니 없는 가격에 지프를 통째로 빌렸다.
고락뿌르에서는 고생하기 싫어서 아예 여행사에서 기차표를 샀다.
빠듯한 지갑사정을 걱정하고, 예산계획을 수정하고, 콜라 한캔 사는것에도 벌벌 기었던 내가
오토바이 사고내고, 병원비가 무서워 하루 지나서야 정부병원에서 30루피짜리 처방을 받았던 사람이
돈을 펑펑쓴다. 사실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그걸 몰랐기에 고생에 고생을 덤태기로 썼던 것이다.
이동수단에 돈을 아까워하면, 오히려 그날 밤 숙박비에 두끼 식사비가 더 나가는 수가 있다.

포카라에서 룸비니, 바이라와를 거쳐 고락뿌르 다시 바라나시까지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를 이동하는데 너무나 많은 힘을 쏟았다.

이른 아침, 바라나시정션역에서 다시금 릭샤꾼과 흥정을 하고,
익숙한 거리를 지나 냄새가득한 고돌리아로 돌아왔다.


선선한 네팔에서 다시찜통같은 바라나시로 돌아왔건만
2주만의 바라나시는 그저 반가울 뿐이다.
다시 수밤이와 옴을 만나면

반갑게  아임 홈~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바라나시는 정말 집에 돌아온 것만 같은 그런 편안함을 주는 곳이다.


매일 새벽이면 옴레스트하우스의 문을 여는 조카 수밤이


잘 돌아왔어 간두킹(게이들의 왕)~



옴으로 돌아왔고
수밤이의 장난은 여전했고,
옴의 미소도 여전했다.
나는 인도에서도 바라나시가 바라나시에서도 옴이 제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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